Story #1.

남들 처럼 쿨하게 살아보는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지요. 쿨하다는게 어떤 사전적 개념적 의미인지도 모른채 뭔가 강하고 쎄보이고 우월해 보였으니까요. 쿨하다. 멋진 단어예요.

어렸을 때의 치기였을까요. 아니면 무한한 방어기제의 역활이였을까요. 구질구질한 모습을 회피하고, 센척 강한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다보니 무엇인가를 ‘아니한데 그런 척’ 한다는 것에 너무너무나 많은 에너지와 힘이 소모 하고 있는것을 알 수 있었어요.

주먹을 쥐고 삶에 힘을 주고 있다보니 더 이상 다른곳에 힘쓰거나 노력 할 수 없었고. 꾸며진 페르소나에 갖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뭐 그런 삶이랄까 그런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편하고 쉽고 좋아하고, 약간은 구질구질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편하고 쉽고 좋아하는 뭐 그런것들도 다시 채워 넣으려는 마음만 살짝 먹었었습니다. 이건 썩 어렵지 않았어요. 단순히 긴장된 가슴을 풀고, 꽉 쥔 주먹을 풀어버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요즘 유행하는 ‘힐링’ 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나 예수님의 복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꾸며진 모습에서 쉽고 편하고 구질구질한 자기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그래서 애증의 테두리의 갖혀 있던 긍정적 가치들도 다시 꺼내 놓았구요.

나를 사랑하자 (나만 사랑하자) 라는 어리석은 가치와 슬로건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은 사랑받고 싶어하는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하는 욕구도 있을진데, 나를 사랑하자라는 가치는 또한 쿨한척 아닌척 씩씩한척 하는 긴장된 모습이었다는 것이죠.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을꺼야 라는 행위 또한 누군가에게 보복하거나 벌을 주는 행위가 아닌 내 자신을 옰아매는 스스로의 포승줄이였다는 것을. 뭐 깨달았다면 깨달았달까요?

 

그러다보니.

예전에 어리석은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그 때 처럼. 쉽고 편하고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다보니. 그때처럼 나를 무척이나 신뢰해주시는 감사하고 고마운 분도 생기고. 또, 굳이 꾸미거나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나의 긍정적 가치를 읽고 보고 느끼는 사람들도 생기더라는거죠.

비록 이 문장을 읽을지는 알 수 없지만. 무척이나 감사드립니다 라고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지금 비록 그 신뢰의 크기 만큼은 되지 않겠지만, 앞으로 그 신뢰의 가치만큼 커나갈 수 있도록 할겁니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실수도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겠지만.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을 찾아가는 나비처럼 그렇게 살겁니다.

왠지 유치하지만 이 문장 적고 싶었어요.

 

그리고
예전에 적어놓은 문장처럼.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은 집중하고, 더 많이 실현하자.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Story #2.

애증의 테두리에 갖힌 긍정적 가치는.
면밀하게 기록된 ‘잔소리’ 의 집합이예요.

이거 상당히 몸에 좋은것 같아요.
지금은 공식적으로 생산되지 않아서 스스로 복제약을 생산해서 복용하고 있구요.

누군가 이 내복약의 효과를 이해해줄 수 있다면
애증의 귀환 또는 부활이라고 봐도 될까요?

 

Story #3.

고민정 아나운서의 발언이나 행동은 검색해서 챙겨보는 편입니다.
많이 배우기 때문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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