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룬 인물이다.

 

어렸을적에는 동네 거렁뱅이들에게 맞고 자랐으며,

못생긴 얼굴에 곱슬머리 상투에 멍청한 머리로

선생님 조차도 료마를 가르치는것을 포기해 버렸지만.

 

끝내 스스로의 열정으로 일본 검술의 달인이 된다.

 

하급무사로서의 최대의 영예를 얻게 된 료마는

1853년 페리제독이 타고 온 미국의 철선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고

검을 버리고 철선을 선택한다.

 

이유인즉슨, 철선은 검보다 강하다는 이유였다. -_-;

당시로서 무사가 검을 포기한다는 것은

남희가 먹을걸 포기하는것과 같은 이치 -_-

 

후에 료마는 죠슈번과 사쓰마번의 동맹을 체결시키고

도쿠가와 막부에 대항해

정권을 메이지 정권으로 이양시키는데 성공하며

이것이 일본의 메이지유신(명치유신)의 기반이 된다.

 

하지만 료마는 명치유신이 단행되기 전 암살된다.

 

바퀴벌레를 무서워했던 그는 -_-

자객을 죽이는게 싫어서 막기만 하다가 죽어주었다고 한다 -_-

심성이 너무 착해 사람을 때리지 못했다고 전해지는 사카모토 료마.

 

사카모토 료마의 명치유신과 서구와의 무역과 근대화로의 단행이

대동아 공영권을 이루는 일본의 기반이 되었고

현재까지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뽑히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나는 죽더라도 앞을 향해서 죽겠다”

라고 말했던 료마.

 

나도 그 처럼 진취적인 기상과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다.

세상사람들이 생각 하지 않는 그 무엇을.

내 가슴에 가득 담고.

이 세상에 나를 뿜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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