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希望)[히―][명사]

1.[하다형 자동사·하다형 타동사](어떤 일을) 이루거나 얻고자 기대하고 바람. 기망(冀望). 소망. 희원(希願).

2.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 또는 밝은 전망.

 

텔레비를 틀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 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희망을 먹고, 희망에 의지하며, 희망을 향하고

희망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가겠는가를 누누히 설명하지요.

 

 

그럴까요?

희망이란 그렇게 너무나도 좋은 절대선일까요?

 

 

”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를 보면서 누누히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할까.

 

가을이 되어서 그런지.

쓸쓸한 바람만큼이나 쓸쓸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진것 같습니다.

 

 

네가 우울한건 해가 짧아짐으로 인해서 하루에 필요한 일조량이 갑자기 격감했기 때문이야

단순히 뇌하수체에서 호르몬 분비의 이상일 뿐이라고.

설명해봤자 속만 박박 긁을뿐 이지요.

 

 

와타나베 준이치 소설을 보면

남자가 가격할인 중에 치약을 사는 모습을 보고 여자가 떠나 버리는데.

사랑은 그렇게도 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누누히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이해하려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인데.

 

보통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변하는 사랑을 이해 아니 인정하려고 하질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희망이라는 형태로 변태되어 갑니다.

 

이미 아웃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단순하고 무의미한 행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가면서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고 왜곡해서 믿으려 합니다.

 

한번 웃어준건.

한번 웃었을 뿐인데요.

 

희망은 사람을 지치게 하는 아편입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밝은 영상을 만들어 그대로 믿어 버립니다.

그리곤 즐거워집니다.

 

하지만 돌아서서 생각해 보면.

이미 쓰리아웃 체인지, 아웃된 상황일 뿐입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

아픔과 저주와 고통은 모두 달아나 버렸지만.

희망은 상자에 왜 끝까지 남아있었을까요.

 

아픔과 고통은 시간이 지나 달아나 버릴 수 있지만.

희망은 인간에게 남아 끝까지 가슴속을 후비는 신이 주신 마지막 원죄는 아닐까요?

 

그래요.

논리적이지도 이해할 수도 없어요.

하지만 가버린건 가버린 겁니다.

 

인정해야지요.

오늘밤만은

아무리 시몬스 침대, 에이스 침대, 그 어떤 인체공학적 침대에서 주무셔도

소용이 없는 겁니다.

그냥 머리털 뽑고 울어버리시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희망도 판도라의 상자에서 사라지고 없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희망에 대해 많은걸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 있어 첨부합니다.

 

타데우스 브로프스키(1922-1951) 라는 사람이 쓴 희망에 대한 글이며,

그는 2차대전을 경험했고, 포로 수용소 생활을 했지요.

전쟁후 소련군이 점령한 폴란드에서 일했습니다.

 

아래는 브로프스키의 글입니다.

 

 

Despite the madness of war, we lived for a world that would be different.

전쟁의 광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좀 달라진 세상을 위하여 살아갔다.

 

For a better world to come when all this is over.

이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좋은 세상이 올 것을 위해.

 

And perhaps even our being here is a step towards that world.

우리가 이곳(수용소) 에 있는 것도 그런 세상으로가는 한 단계라고.

 

Do you really think that, without the hope that such a world is possible,
that the rights of man will be restored again, we could stand the concentration
camp even for one day?

당신은,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없이, 즉 인간의 권리가
다시 회복될 것이란 희망이 없이,
우리가 이 수용소에서 하루라도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It is that very hope that makes people go without a murmur to the gas chambers,
keeps them from risking a revolt, paralyses them into numb inactivity.

바로 그 희망이, 사람들이 가스실로 갈 때도 불평 한마디 없이 가게 만들고,
반란을 걱정하지 않도록 유지하고, 그들을 멍한 상태의 수동적 자세로 마비시키는 것이다.

 

It is hope that breaks down family ties, makes mothers renounce their children,
or wives sell their bodies for bread, or husbands kill.

“희망”은 가족관계를 깨고, 어머니가 자식들을 버리게 만들고,
부인들이 빵을 위해 자기들의 몸을 팔고, 남편들이 살인을 하게 만든다.

 

It is hope that compels man to hold on to one more day of life,
because that day may be the day of liberation.

희망은, 인간을 하루라도 더 살게 만드는 것이다.
혹시 그날이 해방의 날이 아닐까 하기 때문이다.

 

Ah, and not even the hope for a different, better world,
but simply for life, a life of peace and rest.

아. 그리고 그 희망은 달라진, 좋은 세상에 대한 희망도 아니다.
단지 삶, 평화와 휴식의 삶에 대한 희망일 뿐이다.

 

Never before in the history of mankind has hope been stronger than man,
but never also has it done so much harm as it has in this war, in this concentration camp.

이 수용소 안에서만큼 희망이 인간보다 강했던 적은 인류 역사에 없으며,
또 이 전쟁만큼 희망이 이렇게 큰 해를 끼친 적도 없었다.

 

We were never taught how to give up hope,
and this is why today we perish in gas chambers

우리는 희망을 버리는 법을 가르침받은 적이 없었고,
그래서 우리는 오늘 가스실에서 죽어가야 하는 것이다.

 

* Thanks to ‘기억상실’ (Sung by 거미)

 

 

떠난다고 그래서 떠나라고 말했어
사랑하다 한번쯤 하는 말이라서

올꺼라고 다 안다고
거울에 비친 나를 달래고
벌써 손가락 열개를 다 접고
애써 하루를 또 세어도

 

보이지 않아 아직도 내 사랑 하나 못잡고
더듬거리는 손으로 니 사진을 찾다가

자꾸 멀어버리는
내 눈은 한참 눈물 쏟아내고
내 맘은 지독한 멍이 생기고

 

잊으라고 그래서 안된다고 말했어
살아가다 한번쯤 만날것 같아서

나 운다고 아프다고
어느새 지친 소릴 내어보고
(니가 걸어오던 길에서) 멈춰서
(헤어지던 곳에서) 난 내 눈물을 닦아봐도

 

보이지 않아 아직도 내 사랑 하나 못잡고
더듬거리는 손으로 니 사진을 찾다가

자꾸 멀어버리는
내 눈은 한참 눈물 쏟아내고
내 맘은 지독한 멍이 생기고

사랑에 부딪혀 헐어버리고

네가 깊게 새긴 네가 소리 없이 남긴
너란 상처들로 덮힌 나를
불쌍하다고 느낀다면 다시 날 사랑할까

 

화장을 하고 지우고 옷을 꺼내고 입어도
아무리 해도 하나도 기억할 수 없나봐

사랑한다는 말도 들었던 웃는 내 모습을 찾고
돌아올 널 위해 내가 같아야만 하는데
조금도 기억이~ 나지를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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