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날이 어두워지고 밤이되면 사람들은 감상적이 되잖아? 이런저런 글도 쓰고 감정에 젖고 음악도 듣고. 그러다가 논리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아침이 되어, 내가 배설해놓은 것들을 보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도 하곤 하지.

 

사람이란 좌뇌와 우뇌로 나뉘어져 있고, 그것은 이성과 감성으로 분류된다는 것은 여러책들, 텔레비젼 등을 통해서 잘 알고 있을것이라 생각해. 우리의 감성과 이성을 연결해주는 통로는 물리적으로 뇌량이라 불리는데, 이것이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여 서로를 소통하게 만들어주게 되어 있어.

 

밤이 되어 주어지는 우리들의 감상적인 느낌들과. 아침이 되어 느껴지게 되는 우리는 냉정한 사고.

 

왜 사람들은. 아니 나는. 내가 생각하고 사고하는 동일한 물리적 뇌에서 생산되는 그러한 느낌들을 때에 따라 이질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일까.

 

” 너는 아빠니까 넥타이 메고 출근하고, 너는 엄마니까 화장을 하고 아침을 해야해”

 

뇌량이 미성숙한 꼬마 아이들은. 장난감 기차와 바비인형을 들고,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하면서 꾸준히 설명을 하게 되는데, 이건 좌뇌와 우뇌가 서로 소통하는 부분들이 미성숙되어 있기 때문에, 좌뇌는 우뇌에게 자신의 이성을 이야기 하고, 우뇌는 좌뇌에게 자신의 감정을 설명한다는 뇌심리학적 이론.

뭐 이게 정확한 분석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 심리학에서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아저씨들 얘기니까 맞다고 치면, 정말 사람이란 자신의 내면, 물리적인 뇌라는 신체 안에서도 서로 소통하여야만 하는 존재는 아닐까 라는 생각.

 

그래서 그런지 어떤지 잘 알수는 없지만. 종종 사람들은 냉정한 판단과 선택이 가장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면서 괴로워 하곤 하는데. 그래서 이 선택이 어떻게 보면 가장 옳은 결정이라 생각하면서 아파한다는 거. 역설적이면서도 이율배반적이지만. 좌뇌는 좌뇌의 역할을. 우뇌는 우뇌의 역활을. 가장 효율적으로 하고 있는 모습인지도 모르지.

 

단, 스스로의 이성적 판단을. 스스로의 감정을. 내 안에서 조차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 안에서.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남이 바라보는. 남이 선택해주는 그런 삶이 내 삶이라 착각하며 살아가잖아. 이런 사람 되게 많거든.

 

내 느낌과 감정과 행복감들이. 말로 표현하는 이성적으로 선택하는 물리적 좌뇌가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어른들은. 꼬마아이들이 인형의 눈 코 입을 보면서 좌뇌와 우뇌에게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그런 자기성찰 조차 하지 못하는 퇴화된 존재는 아닐까.

 

나를 알아 간다는 건. 바로 그런거 아닐까 싶어.

 

글을 쓴다는거는

 

그래서 부끄럽고 낯뜨거운 얘기들일지라도 적어나간다는 것은.

 

바로 꼬마아이들이 인형을 들고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는 것

 

그런것과 같은것이라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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