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과학과 학문을 높히 사는 이유는 항상 변화한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좀 더 나은, 혹은 이론적으로 분명한 결과가 나오면 그 학문과 과학적 성과에 따라 긍정적인 변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맨날 말바꾸기를 한다는 건데.

 

사랑도 좋고 행복도 좋지만. 사람이 언제나 행복하고 사랑만 받고 살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항상 그러한 명제가 궁금했었다. 우리가 모두 불완전한 존재로써 서로 사랑도 하면서 상처도 주고 그렇게 흘러가는 존재들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도 누군가에게 사랑도 주고 상처도 주고 행복도 주고 아픔도 안겨줄 것이 분명한데.

그래. 밀란 쿤데라 아저씨가 말한. 인생의 초벌그림. 그런거지.

 

여튼 삶이라는 그림은 그려지는거다. 뭔가 하지 않는다면 백도화지로 영원히 남겠지만, 무언가 한다면 무언가가 담겨져 있는 그런 삶이 되는거랄까.

결국 삶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위대한 삶의 관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소화해나가느냐가 그 위대한 명제가 아닐까 라는 생각.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위치나 상황을. 과거에 자신이 행했던 선택이나 결정에 따른 결과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선택에 대한 인생의 영향도는 매우 미미한 편이다. 우리들의 선택과 상관없이 우리들에게 짓눌려지거나 혹은 날아오르게 하는 그러한 삶의 관성 안에서 삶은 이루어지며.

그 안에서 같이 관성에서 다른 삶이 태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선택이라기 보다는. 삶의 관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현재의 인생을. 그래 현재의 인생으로 이루어질 미래의 인생까지.

결정하고 그림 그리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관성을 흐르는데로 맡기며, 그것을 운명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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