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를 보면 소통이 부재된 시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소통하지 못하고 잘못된 관계맺기 속에서 파괴되어 가는 인물들을 통해서 편리하고 약싹빠른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어떠한 것을 상실해가고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행복해지지 않는가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는 듯 합니다.
어린왕자는 소행성 327호에서 술꾼을 만나. 부끄럽기 때문에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는게 가장 부끄럽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실업가를 만났고, 평생 계산기만 두둘기는 지질학자를 만났습니다. 어린왕자는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 라고 하면서 행성을 떠났지요.
그러한 삶들을 둘러 본 후, 어린왕자는 ‘여우를 길들이는 것’ 과 ‘장미를 보살피는 것’ 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요.
하루키의 상실과, 어린왕자의 길들이기는. 부정과 긍정이라는 양가적 개념을 통해서 우리가 추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아마 작가들은 때로는 부정적으로, 때로는 긍정적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가치를 다른 말과 언어와 활자로 서로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거죠.
아마 이것이 인간의 삶에 대한 가치의 통찰이 아닐까 라는 생각.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심리학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사실상 심리학의 결론도 하루키의 소설이나 어린왕자의 길들이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루키의 상실과 어린왕자의 길들이기는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 유대, 애착 하기와 다름 없습니다.
그래서.
삶의 모토가
관계
유대
애착
이라고 하면 너무 좀 간지나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합하진 않지만요.
이상한 어른들이 살고 있는 소행성327에서 살고 싶진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