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천재작가 ‘도스토예프스키’ 의 마지막 작품인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책은 빨간 바탕의 이상한 그림으로 이루어져

 

책의 두께와 활자갯수 만큼이나 읽기가 거북했으나 장장 12일에 걸쳐서 완독할 수 있었다.

 

 

책은 약 1400여 페이지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곤충의 눈알이 촘촘히 박혀있듯이 활자또한 모든페이지에 촘촘히 박혀있는

 

부담스럽게 두껍고 피곤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런 책이었다.

 

 

그러나.

 

수 많은 사람들이 극찬했던 도스토예프스키씨의 유명한 저서인지라

 

형이하학적인 부담감과 압박을 극복하고 지적허영심과 호기심을 충족하기위해

 

첫의 첫장을 열게 되었다고나 할까.

 

 

책의 줄거리는 그렇게 많은 사건들과 전개를 담고 있지는 않다.

 

표도르 까라마조프씨의 세아들이 모이는 시점부터 이루어지는 여러가지 갈등과 공방이

 

며칠사이 시간적 배경속에서 급속하게 이루어진다.

 

 

책을 다 읽고 신기하게 느낀점이란

 

어떻게 이렇게 간단한 줄거리를 가지고, 1400여페이지나 되는 장편소설을 만들어냈을까.

 

 

소설의 묘미는 큰 이야기속의 작은 이야기들이 속속들이 살아숨쉬고 있다는 점이다

 

조연급이든 주연급이든 등장인물을 등장시킬 때 마다

 

그 인물의 성격이나 사회적 배경, 성장해온 과정등을 마치 또하나의 소설을 이야기 하듯

 

매우 맛깔스럽게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성격이나 심리를 정확하게 이해 할 수 있기도 헀으며,

 

그것이 소설의 감칠맛을 더해주었다고나 할까.

 

 

책은 러시아정교와 그것을 부정하는 사회주의와의 대립을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갈등과 사건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와 비기독교(사회주의)와의 형이상학적인 공방은

 

이반과 알료샤라는 두 인물의 대립과 공방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반은 ‘대심문관’ 이라는 자신의 서사시를 통해서 기독교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 혹은 질타하고 있으며,

 

기독교에 새로운 철학적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었다.

 

 

단순히 단군은 악마 조상은 마귀수준의 유치야 놀자 수준의 논리가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형이상학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반의 대심문관은

 

허구의 한 인물을 등장시켜 예수의 행위와 발언에 대해 여러각도로 질타하며

 

예수를 꾸짖고, 그와 빗대어 기독교에 새로운 철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또,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는 법정에서의 검사와 변호사간의 공방을 통하여

 

한 죄인을 무죄와 유죄로 둔갑시키면서 공방을 진행하는데

 

마치 하나의 스릴러물에서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를 활자로 보는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외우기가 조금 복잡하기는 하지만

 

러시아 정교 그리고 기독교의 형이상학적 접근을 소설성 이야기로써 접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향을 뿜어주고 있다.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은

 

책의 두깨 만큼이나 그 이야기가 풍성한 이야기 보따리 같은 책임과 동시에 철학소설이다.

 

 

꼭 일독하실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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