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이반 데니소비치’ 라는 죄수가

 

스탈린 체제하의 구소련 수용소에서 하루 동안 고단한 생활을 하는 모습을

 

소설로 엮은 작품이다.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은 1918년에 태어나 독소전을 겪고 수용소 생활을 겪으면서

 

격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던 사람이다.

 

 

소설은 그러한 작가의 생애 중, 수용소 생활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자전적 성격이 강한 편이다.

 

 

소설에서 죄수들은 다양한 사회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해군 중령인데 반체제 인사로 지목되어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

 

부랑자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부농의 아들이라는 미명하에 수감된 사람

 

영국 정치인에게 선물을 받고 재수없게 반체제 인사로 몰려 수감된 사람 등

 

 

이 사람들은 공산주의 국가의 국시인 절대평등의 개념이 순수하게 존재하는

 

수용소라는 공간에서 왜곡된 평등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아가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기존 직업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정부에게 허가된 준노예로써의 삶을 살아나간다.

 

 

빵 하나에 목숨을 걸고, 살이 다 떨어져나간 생선조각을 쭉쭉 빨며,

 

양배추 국을 먹기위해 서로 눈치를 보고 밀치는 절대평등 속의 사람들.

 

 

이 사람들은 그들보다 더 평등한 사람들을 위해 공장을 짓고 영화관을 만들고

 

무보수로 노동을 하며 평등을 종용당한다.

 

 

솔제니친은 이러한 소련 사회주의와 국시인 절대평등의 부조리를

 

리얼리즘적인 소설인 ‘이반 데니소비치’ 를 통하여 고발함으로써,

 

반소(반소련주의)적 소설이라는 추궁을 받아 러시아에서 쫓겨나기도 하였다.

 

그마만큼 이 소설은 체제와 현실의 반목과 갭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데

 

그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죄수들이 담배하나에 목숨을 걸고, 식사를 하기위해 더 빠른 줄에 서려고 노력하며

 

무보수로 벽돌을 쌓는 작업과 중노동을 매일매일 진행하며

 

매일 잠이 모잘라 여기저기서 잠이 드는 장면을 보니

 

마치 군대시절로 회귀한 듯한 느낌이 들어

 

이 소설에 흡입력 있게 빨려들었다고나 할까.

 

 

아마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이라면

 

수용소 생활이나 군대생활이나 진배 없다는 것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씁슬한 향수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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