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의 거장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은

 

소설의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색깔을 강하게 뛴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사회주의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설속에서 녹녹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특이한 작품.

 

 

소설은 전형적인 지주의 상징인 네흘류도프와 프롤레탈리아의 상징인 카츄사의

 

사랑으로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들의 사랑은 열정적이고 순수하지만

 

귀족과 지주의 신분인 네흘류도프와 하녀와 무산계급의 신분인 카츄사의 사랑은

 

그 신분의 차이만큼이나 서로에게 상처만 주게 되고

 

둘의 삶을 가열차게 죽여버린다.

 

그래서 네흘류도프와 카츄사는 껍데기만 남은 주검의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되어버린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카츄사를 우연히 조우하게 된 네흘류도프

 

자신의 어리석고 짧은 행위가 카츄사를 얼마나 병들게 했는지를 느끼게 되면서

 

좀비로써의 삶을 괴로워하며 카츄사의 상처와 자신의 삶에 대한 부활을 꿈꾸게 된다.

 

 

그는 배심원의 위치, 혹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통해

 

죄수가 된 그녀를 따라다니며 그녀를 자위적으로 배려하고

 

러시아 정부가 약디 약한 그녀에게 행하는 법적 물적 폭력을 통해

 

국가가 개인에게 행하는 폭력에 대해 깊이 고찰하게 된다.

 

 

소설은 귀족과 무산계급의 어긋난 사랑을 배치시킴으로써

 

국가주의적 현실이 가지는 부조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을 통하여 톨스토이는 사회주의의 당위성에 대해서 주장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평등해질 수 있는 사회주의만이 세상 사람들을 부활 시킬 수 있다고

 

상징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소설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다분히 사회주의적, 무정부주의적 색채를 띈다.

 

이미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기회의 평등이 아닌 절대적 평등이 인간의 본성과 현실에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

 

현실로 평가받은 현재의 시점에서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 은

 

우리 인류가 본성에 거스르지 않고 서로 잘 살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성장통을 겪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막시즘은 상당히 매력적인 정치이론임은 분명하지만

 

사람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타고났으며, 그렇기 때문에 절대 평등할 수 없고

 

그 개성을 부조리없이 최대한 살려줄 수 있는

 

성숙해가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라는 국시를

 

상대적으로 깊이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고전임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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