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읽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올드보이로 그 명성이 높은 박찬욱감독이 내놓은 복수시리즈 3편 ‘친절한 금자씨’

 

이 영화의 설정은 아시다시피 유괴살인죄로 기소되어 13년간 복역한 금자씨가

출옥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금자씨가 회상하는 형식으로 그녀가 어떻게 감옥에 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백선생 이라는 사람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정갈하게 설명해주지요.

 

그리고 그녀는 13년간 복수를 준비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이태리 타월로 때를 박박 밀어내듯 죄를 밀어내기 위해 복수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금자는 또다른 금자로 변해갑니다.

 

최근 정신분석학의 일환으로 KBS에서 다큐멘터리에서 ‘사이코패스’ 라는

인물유형에 대해서 분석을 한적이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란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슈나이더가 1920년대에 소개한 개념으로써,

일반인과 비교하여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기능이 15% 밖에 활성화 되있지 않은

사람을 의미하며, 유전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해 살인이나 범죄를 저질러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공격성을 조절하는 셀라토닌이라는 물질의 분비가 취약하여

사소한 일에도 강한 공격성을 보이는 유전적 정신병의 일종입니다.

 

영화에서 백선생이라는 사람은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인물묘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기적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일이든지 할 수 있는 그러한 인물입니다.

남의 고통이나 슬픔따위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영어교사로써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면서 유괴를 일삼는 이중적인 모습과

극중 아내와의 섹스장면은 그의 감정조절 능력이 얼마나 퇴화되어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금자씨가 복역하게 되는 교도소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사회에서 한가지씩 물의를 일으킨 사이코패스들입니다.

속칭 마녀라 불리는 죄수 우두머리는 바람난 남편을 살해하고,

그의 육신을 잘라내어 구워먹다가 경찰에게 구속되었습니다.

 

그녀는 뚱뚱한 여자신참을 잘 길들여서 자위행위를 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신참이 어떤 감정을 느끼든 그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행위만이 중요할 따름이지요.

 

하지만 교도소라는 국지적인 공간에 있는 사이코패스들은

처음부터 사이코패스였던 백선생과는 달리 모두 제각각의 상처들을 소유한

후천적 사이코패스들입니다.

 

저마다 아픈상처 하나씩 손바닥으로 가리고 있으며,

그것이 드러날때는 불특정다수를 향해 부끄러워하면서 성질을 내곤 하지요.

그것이 후천적 사이코패스들만의 특징이며, 선천성 사이코패스와 다른점이지요.

 

영화내에서 금자씨는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내에서

후천적 성향의 사이코패스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은유하게 보여줍니다.

 

금자는 같이 수감하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백선생을 폐교에 감금시키고,

백선생이 유괴했던 아이들의 부모와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자신의 복수심과 유괴아친부친모의 복수심까지 증폭시켜 백선생을 잔인하게 죽여버립니다.

 

영화 ‘올드보이’ 를 기대하고 본다면 매우 많이 실망할만한 구성입니다.

 

금자씨는 반전도 없고, 이야기의 내용이나 하고자 하는 말도 대부분 정확합니다.

‘네가 나를 괴롭혔으니 나도 괴롭혀주겠어’

라는 논리가 영화의 결말까지 이어지죠.

 

그리고 올드보이에서 보여주었던 하드코어적인 비주얼은 대부분 표현되지 않아

무미건조한 느낌마저들게 합니다.

 

금자와 빵집종업원과의 성행위

백선생이 자신의 아내에게 폭력을 가해 얼굴이 이그러지는 모습.

백선생을 도끼로 찍꺼나 가위로 목을 파버리는 복수행위.

 

관객에게 피해의식과 공감을 쥐어줄만한 비주얼을

모두 유추할 수 밖에 없는 장면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실제로 금자씨는 그렇게 잔인한 장면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유는 잔인해야할 장면을 모두 관객의 상상에 맡기어 버렸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구성이 관객에게 백선생이 얼마나 악랄하고 나쁜사람인지에 대한

충분한 감정적 공감대를 형성시켜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백선생이 고통을 당하며 죽어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금자씨는 13년전의 죄없는 금자로 돌아가기 위해 복수의 칼날을 갈았습니다.

감옥내에서 흰옷을 입고있는 금자는 금자의 마음씨가 흰색처럼 고결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금자가 실제 복수를 열망하고 준비하면서

검은색 가죽자켓으로 유니폼이 바뀌어 버립니다.

 

복수를 끝낸 금자.

하지만 그녀의 옷은 여전히 검은색 가죽자켓입니다.

 

13년전의 흰색의 고결한 금자로 돌아가기 위해 복수를 했지만

그 복수를 통해 그녀는 본성조차 검은색으로 물들어 버렸습니다.

 

검은자켓을 입은 금자가 마지막으로 미친듯이 얼굴을 파묻은 하얀두부케익.

그리고 금자에게만 쏟아지는 하얀 눈꽃송이.

그것은 옛날의 금자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복수 그 이상의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더이상 하얀색의 고결한 금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금자씨는 종결이 됩니다.

뭔가 찝찝하지요.

 

생각해보면.

세상을 살아나가는 우리는 감옥에 갖혀 울부짖는 금자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울퉁불퉁한 세상속에 긁혀 상처입은 우리들은 후천적 사이코패스의 원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뫼비우스의 띠와같은 커다란 딜레마이지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실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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